24개월 언어평가 결과, 수용 20개월·표현 16개월|심리사 엄마가 놓쳤던 것
“우리 아이는 말귀는 잘 알아듣는데, 표현만 조금 늦어요.”
말이 늦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익숙한 표현입니다. 저 역시 우리 아이를 그렇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생후 24개월을 앞두고 표현하는 단어가 2개밖에 되지 않았지만(그마저도 거의 안했던), 집에서는 익숙한 지시에 반응하고 엄마가 하는 말을 제법 잘 이해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낯선 사람과 공간을 조심스러워하는 편이었습니다. 저는 신중하고 위험회피 성향이 높아 보이는 기질이 언어 표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호명 반응과 눈맞춤, 정서적 반응의 차이를 걱정했고, 우리는 전문적인 평가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아이가 정확히 두 돌이 되는 날,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에서 객관적인 발달 평가를 위한 첫 언어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 결과는 제가 예상했던 모습과 조금 달랐습니다.
1. 생후 24개월에 받은 첫 언어발달검사
아이가 받은 주요 검사 중 하나는 영·유아 언어발달검사(SELSI)였습니다. 검사보고서에 기록된 결과 다음과 같았습니다.
| 평가 영역 | 언어 등가연령 |
| 수용언어 | 20개월 |
| 표현언어 | 16개월 |
| 전체언어 | 18개월 |
보고서상 수용언어와 표현언어, 전체언어의 또래 기준 백분위는 모두 1백분위 미만으로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임상심리사로서 백분위 1%ile 미만은 정말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숫자이기도 합니다. 많이 놀랐고, 가슴 아프고, 먹먹하기도 하고, 이 복잡한 심경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정말 모르는 것이겠다 싶었어요. 매번 병원에서 종합심리평가를 진행하고, 결과상담을 할 때, 경계선 지능이나 아이의 심한 우울이나 ADHD경향성 등에 대해 검사 결과를 기반으로 부모님께 해석상담을 하고, 있는 그대로 아이의 상태를 설명하는 것이 제 주요한 업무였는데, 제가 막상 부모님의 입장에서 이 결과를 받아드니, 앞이 막막해지고, 순식간에 깊은 구덩이로 떨어지는 것같은 기분이더군요.
그 동안 소아청소년정신건강의학과에서 근무하며 마주했던 부모님들의 심경을 더 깊이 헤아리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하고 부끄러운 마음도 함께 들었어요.
이 결과를 처음 접했을 때 중요하게 보였던 것은 표현언어만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비교적 괜찮다고 생각했던 수용언어 역시 표준화 평가에서는 또래보다 낮게 나타났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수용언어는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이나 언어적 정보를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표현언어는 자신의 생각과 요구, 의도를 말이나 다른 표현수단을 통해 전달하는 능력입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같은 능력은 아닙니다.일상에서는 익숙한 지시를 이해하는 듯 보여도, 표준화된 평가에서 확인하는 어휘와 문장 이해, 다양한 상황에서의 언어 처리 능력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부모의 일상 관찰과 검사 결과를 함께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2. 수용언어 20개월, 표현언어 16개월이면 예후가 좋을까요, 나쁠까요?
사실 검사 결과에 나타나는 숫자와 백분위만으로 '발달지연'이다, 추후 '발달장애 가능성이 높다' 혹은 '정상발달로 올라올 수 있다'고 말할 근거는 어떤 것도 없습니다.
정상발달로 올라오는 아이들에게 중요한 지표는 치료적 개입을 통한 일상에서의 '과정', '발달 진전의 양상' 즉 과거 '지연 결과'가 아닌 현재의 발달 양상과 반응성이 훨씬 중요하거든요.
먼저 언어 등가연령은 아이의 모든 능력을 해당 월령으로 환산한 진단명이 아닙니다. 수용언어 20개월이라는 결과는 평가도구의 기준에 따라 그에 해당하는 수행 수준을 보였다는 뜻입니다. 표현언어 16개월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수용과 표현 사이의 등가연령 차이가 4개월이라는 사실만으로 발달의 불균형 정도나 미래의 예후를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표준점수와 백분위, 검사의 측정 특성, 실제 관찰, 언어발달의 변화 속도를 종합해서 살펴봐야 합니다.
그럼에도 '수용언어는 양호하다는 점'은 예후에서 중요한데, 왜 그런 걸까요?
미국언어청각협회(ASHA)는 표현언어만 지연된 아동과 비교해 수용언어와 표현언어가 함께 지연된 아동에게 이후 언어발달 어려움이 지속될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설명합니다. 그렇다고 수용언어가 조금 늦게 나왔다고 반드시 장기적인 언어장애가 발생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반대로 수용언어가 양호하다고 해서 반드시 별도의 도움 없이 정상적인 발달 궤도에 올라온다고 장담할 수도 없습니다.
3. 어휘검사에는 '표현 0개'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검사에서는 한국판 맥아더-베이츠 의사소통발달 평가(K-M-B CDI)도 활용되었습니다.
보고서의 어휘 목록 결과에는 641개 어휘 중 이해하는 것으로 표시된 항목이 292개였고, 표현하는 것으로 채점된 항목은 0개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가 정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는 뜻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같은 보고서에는 보호자가 아이가 사용한다고 보고한 단어와, 평가 중 치료사가 실제 관찰한 자발화가 따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익숙한 가족 호칭, 요구 표현 등이 보고되었고, 검사 상황에서도 짧은 자발 발화가 관찰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검사 결과는 단순히 '표현언어가 아예 없다'고 해석할 것이 아니라 어휘 체크리스트의 채점 결과와 실제 보고·관찰 사이에 차이가 있었다고 읽어야 했습니다.
그 차이가 왜 발생했는지는 검사 기록만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체크리스트 작성 기준과 채점 과정, 아동이 단어를 사용하는 일관성 등을 평가자와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아이의 사례가 보여주는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특히, 이 연령대 아주 어린 아이들의 발달 평가 방식의 한계이자 중요한 지점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보고식 체크리스트, 표준화검사, 치료실 관찰은 모두 유용하지만 각각 포착하는 정보가 다를 수 있습니다. 검사표의 숫자 하나만 떼어내 아이의 능력 전체를 설명하면 중요한 정보를 놓칠 수 있습니다.
4. 언어뿐 아니라 '놀이의 수준'도 평가했습니다
이번 평가보고서에서 제가 특히 관심 있게 살펴본 부분은 상징행동과 놀이에 대한 관찰이었습니다.
보고서에는 자동차를 굴리거나 장난감을 조작하는 전상징적 행동이 주로 관찰되었고, 단순 상징행동도 일부 나타났다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반면 평가 장면에서 물건을 다른 물건으로 대신 사용하거나, 인형 등의 역할을 확장하는 놀이는 관찰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놀이의 양보다 질적인 변화입니다. 자동차를 단순히 굴리는 행동과, 자동차에 사람이 타고 어디론가 가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놀이는 서로 다른 수준의 상징적 표현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
놀이를 통해 아이는 실제 사물과 상황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그 의미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연습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언어발달을 평가할 때도 상징놀이, 제스처, 사회적 상호작용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주의할 점도 있습니다. 한 번의 치료실 평가에서 특정 놀이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서 아이가 그 놀이를 전혀 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낯선 장난감, 평가자와의 친숙함, 피로도, 활동에 대한 흥미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또 보고서에 표시된 '최고 수준 행동 16~17개월'이라는 분류를 아이의 전체 놀이 발달연령이 16~17개월이라는 뜻으로 해석해서도 안 됩니다. 그 수치는 해당 관찰체계에서 확인된 행동 유형의 발달단계 분류입니다. 더 정확히 이해하려면 가정에서의 자유놀이, 부모와의 상호작용, 치료실 관찰을 함께 비교해야 합니다.
*놀이 수준은 평가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발달', '학습'을 할 수 있거든요. 그리고 '놀이'를 통해 '상호작용'을 배워 '사회성'을 기르고, 놀이를 통해 또래와 타인과 소통하는 아주 중요한 창구이기 때문이에요. 지금도 우리 아이의 언어치료는 '놀이'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언어적 발달 촉진을 하는 것과 동시에 상징놀이의 확장과 발달을 주요한 치료적 목표로써 두고 있습니다.
5. 언어 평가 결과는 '언어발달지연' 뿐만이 아니었다. 눈맞춤과 호명반응이 부족해 사회성 저하가 의심되며, 이에 대한 세심한 추적관찰을 요구한다는 결과
결과적으로 언어평가 결과, 언어발달 지연 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의 '사회성 저하', '사회성 부족'이 의심된다는 의견이었어요. 주 2회 언어치료 권고를 받았고, 놀이치료 또한 조심스레 권고하시더군요. 왜냐하면 언어평가 상황에서 아이는 장난감에만 관심을 주로 보였고, 평가 대상자인 선생님에 대한 관심이 부족할 뿐더러 호명반응과 눈맞춤이 아주 제한적이었다고 해요. 낯선 상황임을 감안하더라도요. 따라서 눈맞춤과 호명반응만을 채점하고 평가하는 객관적인 선별도구를 활용한 것은 아니지만 언어재활사 선생님의 개인적인 의견이었기 떄문에 우리 부부는 이에 대한 감별진단, 가장 우려스러운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의심해야하는지 여부 등을 확인하기 위해 3개월 후에 진료가 예약되어있던 해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도 그대로 진행하기로 결정내렸습니다.
우선 사람에 따라 반응이 다르다는 사실만으로 애착의 질이나 자폐스펙트럼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아이가 어떤 사람에게 친숙한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말로 부르는 상황인지, 주변에 방해 자극이 있는지 등을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그렇지만 특정 상황에서 반응이 양호하다는 이유로 다른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관찰되는 어려움을 무시해서도 안 됩니다. 미국소아과학회(AAP)는 발달 평가에서 발달력과 보호자의 보고, 직접적인 행동관찰 등을 종합할 필요가 있다고 안내합니다. 우리 부부에게는 엄마와 아빠의 서로 다른 관찰을 비교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정보 수집이었습니다. 저는 아이를 가장 오래 보고 있었지만, 남편은 저와 다른 상호작용의 장면을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6. 24개월 언어지연, 정상적으로 따라잡는 아이도 있지 않나요?
있습니다. 다만 이를 정확하게 표현할 필요가 있습니다. 언어발달이 늦게 시작된 아이 중 일부는 이후 또래 수준의 언어능력에 도달합니다. 이런 아이들을 흔히 'late bloomer', 즉 늦게 발달이 두드러지는 아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ASHA는 연구에 따라 언어 출현이 늦었던 아동의 약 50~70%가 이후 특정 시점에 또래 수준의 언어발달을 보였다고 소개합니다. 그러나 이 수치는 모든 아이에게 적용되는 회복 확률이 아닙니다. 연구마다 포함된 아동의 특성과 평가 시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또 또래 수준의 점수를 회복한 아동 중 일부에게는 이후 복잡한 언어능력이나 읽기와 관련한 취약성이 남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말이 늦은 아이는 결국 다 따라잡는다”는 말도, “24개월에 언어가 지연되면 장기적인 문제가 생긴다”는 말도 모두 지나친 일반화입니다. 실제로 중요한 것은 아이가 지금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후 몇 주 또는 몇 달 사이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입니다.
7. 임상심리사 엄마가 이 경험에서 배운 것
저는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의 신중한 기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지식이 아이의 모든 행동을 기질로 설명하도록 만드는 렌즈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남편의 관찰이 제 생각과 달랐던 순간, 저는 그 차이를 없애려 하기보다 자료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첫 언어평가 결과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수용언어까지 폭넓게 살펴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전문가가 부모라는 사실이 아이를 더 정확하게 보게 해주는 순간도 있지만, 부모라는 사실이 전문가의 시야를 좁히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날 받은 검사 결과는 아이의 미래에 대한 확정된 답이 아니었습니다.
대신 앞으로 무엇을 관찰하고, 어떤 놀이와 상호작용을 시도하며, 언제 다시 평가해야 할지 고민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우리 아이는 여전히 자기 속도로 발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임상심리사이기 이전에, 그 변화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함께 배우는 엄마입니다.
이 블로그에는 앞으로 치료실에서 들은 설명을 일상에서 어떻게 적용했는지, 부모의 개입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아이의 언어와 놀이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차근차근 기록해 보려 합니다.
그리고 아이의 언어발달지연 뿐만 아니라 사회성 저하, 자폐 스펙트럼장애가 의심된다는 소견에 대해 우리 부부의 선택과 개입도 함께 공유하려고 합니다.
아이를 더 빠르게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필요한 도움을 적절한 시기에 제공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24개월 언어발달이 걱정된다면
언어발달에 대한 우려가 있을 때는 한 가지 검사점수나 인터넷 체크리스트만으로 판단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소아청소년과 등의 의료진과 발달 우려를 상담하고, 필요한 경우 언어평가와 청력평가, 사회적 의사소통과 놀이 관찰을 함께 고려할 수 있습니다. 이미 할 수 있던 말이나 사회적 기술을 잃는 모습이 관찰된다면 기다리지 말고 신속하게 전문가에게 알리는 것이 좋습니다.
*본 글에 등장하는 발달평가 결과는 한 아동의 실제 사례이며,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식별정보를 제외했습니다. 검사 결과는 당시의 평가자료로, 이후의 발달 상태나 최종 진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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